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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_Other

시를 잊은 그대에게 _ 정재찬

by pub-lican-ai 2019.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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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_ 윤동주 <별 헤는 밤>

처음엔 추상적인 어휘가 별과 연결되더니 어머니에 다다르면 어조가 바뀐다.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를 연결할 때는 어딘가 멋과 여유마저 느껴지더니 어머니를 떠올리는 순간 시인은 연거푸 어머니를 되뇌며 갑자기 정신을 차린듯이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것이다. 덜컥 어머니를 불러놓고 보니 느낌이 달라지고 시가 달라지는 게다. 그리움의 물꼬가 터지자 그 다음 부터의 연상은 차라리 폭포수에 가깝다. 이제 더이상 관념이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들이 기억 저편에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운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고통인가. 그리움 덕택에 살고 그리움 때문에 못 살겠는 것을.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_박노해 <다시>

늘 사회가 썩었다고 하지만 늘 자신은 거기서 예외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전혀 썩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게된다. 다만 적어도 우리 사회가 썩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한 우리에겐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면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이 시는 차다 맨 마지막 시어 윗목만 아랫목으로 바뀌었다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년 전체가 기다림이자 어둠, 배고픔, 추위였다. 윗목 아랫목 따로 없는 냉골이었으리라. 모두 차가우면 나았을 것을, 하필이면 뜨거운 것이 오직 눈시울 뿐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귀천>

억울하고 허무하고 속 답답할때는 이 시를 읽자

 

시를 잊은 그대에게 - 정재찬, 단일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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